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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 분류법 : 제4의 예술(le quatrième art) - 음악

by 헌찬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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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 분류법에 의하면, 제 4의 예술은 '음악'이다.

 

진동 주파수의 세기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듣기 좋게 조합해서 음성, 가락, 박자 등을 갖가지 형식으로 조합하고 결합하여 청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예술을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을 통해 본인의 생각,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낼 수 있으며, 음들이 조합된 순수음악, 즉 아름다운 소리 자체만을 추구하기도 한다.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청각적, 시간적 예술로 음악을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일정한 규칙의 화성이나 선율과 박자와 음정, 그리고 가사를 통해서 내는 소리를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의 3요소로는 리듬, 멜로디, 화성이 있다. 시끄러운 소리와는 천지 차이이다. 하지만 현대의 실험적인 음악가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소음을 음악에 삽입하기도 한다. 구체음악이나 노이즈 등이 여기에 들어가고,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대표적 예이다.

음악을 구분할 때 대표적으로는 가사가 붙은 성악, 가사가 없는 기악으로 분류한다. 음악의 장르들은 민요, 클래식, 대중음악, 뉴에이지, 국악, 가가쿠 등 참으로 다양하다. 요즘은 K-POP도 음악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서구 클래식의 12음계를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은 '피타고라스'다. 소리가 어떤 기준으로 변화할까를 고민하던 중 저음과 고음의 차이를 진동 폭의 차이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음악과 수학을 연결 지어 음률의 수학적 해석과 나름의 철학을 전개하기도 했다. (플라톤에게 비판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현대적 의미의 음악은 서양 문화에 기반을 둔다. 그 기원은 예술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자들은 고대인들이 잔치를 벌이는 이유가 모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방이란 단순히 자연물이나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집단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들이 느낀 감정(pathos)을 표현하고, 타인으로부터 그 감정이 전달되는 일종의 체험이었다. 이를 '미메시스'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를 찬양하기 위해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 디오니소스 찬양을 위한 제사 의식을 디티람보스라고 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행위를 가리켜 코레이아라고 한다. 코레이아가 이루어지던 장소는 원형 극장이었는데, 이를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다.

오케스트라에는 춤을 추는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 막사가 있었는데, 이 막사를 스케네라고 불렀다. 이 스케네가 점점 커져서 현재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공연무대가 되었고, 관람자와 연주자는 이때부터 나뉘게 되었다. 이것이 공연 예술의 시작이다. 이 공연 예술에서 많은 것들이 파생되어 나오는데, 우리가 아는 음악이 이 공연의 서사적이고 음악적인 요소, 뮤지케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뮤지케라는 단어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가 죽는 날을 다룬 것에서도 등장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신들이 꿈에서 자신에게 명령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여, 뮤지케(μουσική)에 힘쓰라." 이 뮤지케는 한국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는 없다. 정확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여러 학자가 서로 다른 번역을 내놓았는데, 정암학당에서는 '시가(詩歌)'로, 천병희는 '예술 작품을 만듦'으로 번역한다. 혹자는 단순히 '음악(音樂)'으로 번역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번역이 갈리는 이유는, 뮤지케 역시 오늘날의 음악만큼 명확하게 그 영역이 구분된 예술의 종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뮤지케는 오늘날의 음악처럼 소리를 다루는 예술의 영역이었는데, 동시에 소설이나 서사시와 같은 서사적인 예술이기도 했고, 또한 현대 시처럼 운율을 다루는 예술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제작 행위를 언어로 다룰 때,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발현되는 기술(테크네, τέχνη)과 영적이고 감정적인, 즉흥적인 요인으로부터 발생하는 창작(포이에시스, ποίησις)으로 나누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둘 다 한국어로 '제작' 정도로 번역된다. 흔히 오늘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비교할 때 이 두 개념을 사용하는데, 예술의 아폴론적 측면이란 테크네에서 기원하고 디오니소스적 측면이란 포이에시스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대한 고대인의 관점을 보여주는 신화가 하나 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예술(=뮤지케)로써 대했는데, 아폴론은 현악기(줄을 활로 그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했고, 디오니소스는 관악기(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주했다.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라서 대결이 판가름 나지 않자, 아폴론은 악기를 거꾸로 들어 연주해 보자고 한다. 거꾸로 들어도 동일한 소리를 내는 아폴론의 현악기와는 달리 디오니소스의 관악기는 거꾸로 분다고 해서 소리가 날 리 없었고,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에게 패배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아폴론이 허구한 날 리라 연주하고 디오니소스가 한량처럼 피리만 부는 것도 고대인의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서 거꾸로 연주해도 연주가 된다는 측면이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예술 작품의 균형(συμμετρία )을 중요시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황금비율은 이러한 그들의 균형에 관한 관점을 보여준다. 철학으로는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등이 이러한 '어떤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존재와 균형'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균형을 중시하던 고대 사람들의 모습이 음악 속에서도 여실히 보인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뮤지케, 즉 오늘날의 음악과 서사시, 소설 등이 테크네가 아닌 포이에시스에서 기원한다고 보았다. 당장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신화를 생각해 보자. 뮤지케는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 뮤지케는 디오니소스적인 것, 즉 파토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오늘날 회화보다 음악이 대중에게 더 감정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고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 사유를 중시한 플라톤이 줄곧 시인들을 비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플라톤 학파의 사람들은 감정을 이성과 균형미보다는 낮은 것으로 여겼다. 마치 디오니소스의 연주가 아폴론에게 패배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뮤지케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당장 소크라테스가 신으로부터 '뮤지케를 하라'는 명령을 들었다는 구절도 플라톤이 쓴 것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플라톤은 뮤지케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져야 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뮤지케가 불러 일으키는 미메시스의 가능성에 대해 동의한 것이다. 다만 플라톤은 통속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현대의 작품들로 예를 들자면 양판소나 막장 드라마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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