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예술 분류법에 의하면 제2의 예술은 '조각'이다.
조각이란 미술의 일종으로 좁은 의미로는 이런저런 물질을 새기거나 깎아 만드는 행위 또는 그 가공물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조각을 하는 주체'의 기준에서 어떠한 매체를 '가공'하는 행위, 가공된 물질 등의 전반적인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행위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을 조각가라고 부른다.
조각은 그 기원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표현 기법이다. 그 옛날 선사 시대부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과 같은 작품이 존재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조각이란, 예술의 모든 시초가 그렇듯 모든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생애 한번쯤 시도해볼 수 있는 의미가 담기는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창작 행위이다. 조각은 '원물을 깎아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미술에서는 입체 표현 방법 중에서 금속이나 돌 같은 단단한 물체를 깎아내는 것만 조각으로 부르고 있다. 그와 달리 찰흙처럼 부드러운 것을 붙여가면서 모양을 만드는 것은 소조라고 부르며, 조각과 소조를 합쳐서 함께 조소라고 부른다. 시대가 지날수록 조각가는,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었을 시기를 넘어서, 훨씬 더 확장된 존재가 여겨지고 있다.
조각을 재질에 따라서 분류할 수 있다.
석상은 돌, 석재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조각상을 의미하고, 동상은 청동, 동 소재로 주물을 통해 캐스팅 기법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또한 목각상은 나무, 목재를 깎아 만들어낸 조각상을 의미한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는, 심지어 3D프린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조각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재질도 플라스틱부터 금속, 콘크리트까지 다양해졌고 규모도 수십미터 크기까지 확장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돌로도 조각했으나, 딱딱하게 굳은 커다란 점토로 조각을 많이 했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조각상으로는 '라마수상'이 대표적이다.
고대 이집트는 주로 파라오와 고위층을 모델로 조각했기 때문에 굉장히 정형화된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아케나톤 시절에 들어서 단행한 대대적인 미술 개혁으로 섬세한 포즈, 모델의 표정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여담으로 고대 이집트 조각상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조각상을 제작할 시점에 조각의 모델이 살아있으면 오른발은 뒤로, 왼발 부분 앞으로 나오게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미 죽은 모델을 조각할 때는 차렷을 한 채로 두 발을 붙인 채로 조각했다.
위에서 서술한 두 문명의 조각 기술은 시간이 흘러 지중해를 건너 조각 문화의 대장 격인 고대 그리스에서 결실을 보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경악에 가까운 감탄을 내뱉게 만든 라오콘 상은 물론이고,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은 파손이 서서히 진행됨에도, 파손된 모습마저 아름답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이 되었다. 현대 조각가들도 이 시대에 정립된 기법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가 현대 조각사에 끼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식 조각 기법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고, 특히 인도에서 변형된 간다라 양식은 멀리까지 전해져 우리나라 최고 조각인 석굴암이란 걸작을 만들어냈다.
헬레니즘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 역시 그리스처럼 조각에 열광했다. 로마 황제들은 광적으로 자신들을 모델로 한 조각상을 만드는 데 집착했는데, 본인들의 신격화를 위해서 크기,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위엄 넘치게 했다. 물론 사실성을 중요시하던 헬레니즘 조각술답게 사실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애썼고, 로마 황제는 과거의 인물일수록 그 모델의 생김새를 파악하기 쉬운 현상이 일어났다.
동양에서는 많은 불상이 조각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 때에 많은 반가사유상과 석탑들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에서는 석굴암 본존불이 대표적이며, 불상 외에도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의 금강역사 부조 등 불교와 관련된 상이나 무열왕릉비, 성덕왕릉이나 김유신묘의 십이지 조각상 등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중세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조각이란 표현 기법의 힘이 약해졌던 때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이 크다. 이 두 종교는 둘 다 우상 숭배를 금지했고, 우상 숭배의 주요 방식이었던 조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조각상에 대한 인기, 제작 빈도가 급격히 낮아졌고, 이는 조각가들 작품의 질적 하락과 표현 기법의 단순화를 야기하게 되었다.
그 기원은 고대였으나, 중세 시대에도 존재했던 로마 제국의 조각상을 보면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조각상은 아우구스투스의 것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나마 옛 헬레니즘 시절의 정교한 양식을 보이나, 포카스의 조각상은 여러모로 이전 시기의 조각에 비해 표현이 많이 단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전통 교회가 추진한 성상 파괴 운동으로 포카스 이후의 황제들은 조각상을 거의 남기지 못한 계기가 되었다.
유럽과 다르게 한반도는 기존 종교의 몰락이 아닌 번영으로 이렇게 된 사례다. 불교가 고위층의 전유물이었던 삼국 시대와 달리, 한국사에서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 시대에는 일반 민중에도 불교가 퍼져 번영했다. 이 영향으로 불상 또한 대중화되었는데, 문제는 일반 민중들은 가난해서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삼국시대에 쌓아 올린 고급 조각 기술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고, 비용을 적게 들여 만들다 보니 화려한 조각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