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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학

by 헌찬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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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학(音樂史學, 영어: Music History, 독일어: Musikgeschichte), 혹은 역사적 음악학(독일어: Historische Musikwissenschaft)은 음악과 관련된 모든 분야들의 역사적 발전과 변화를 대상으로 하는 음악학의 한 연구분야이다. 음악학 내의 다른 분야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사 대상의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즉 “변화에 대한 이해의 관점”에서의 연구이다.

음악사학은 음악을 역사 속에서 연구하는 학문분야이다. 음악사학에서는 음악, 음악의 역사, 음악과 인간의 역사를 통해 인간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문정신의 실현에 목적을 둔다. 


음악과 음악사학

음악은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예술로 인간의 고도의 이성과 감성의 조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인류 문화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왔으며 인류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음악과 음악의 역사, 음악을 통해서 본 역사에 대한 탐구는 기초 인문학에서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음악사학은 음악과 음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과 인도 등에서부터 연구되던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학문이다.

음악사학은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연구라는 기본적인 영역에서 시작하여 음악이론과 (소위 음악철학이나 음악미학으로 알려져 있는)사상, 장르와 사조의 변천, 음악과 문학 및 무용 등 타 예술장르와의 관계,음악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의 관계 등의 역사를 다룬다. (단 음악연주는 실기의 영역이기 때문에 학문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러한 음악사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음악사학자(音樂史學者)라고 한다. 


서양 음악사학

서양음악사학은 서양음악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거쳐 중세시대에는 대학에서 7가지 자유 인문 학문 중 하나로 연구 및 교육되었다. 르네상스를 거쳐 18세기 포르켈 등을 위시한 독일을 중심으로 근대학문으로서의 인문학으로 발전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뛰어난 음악사상가이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아리스토크세누스, 아리스티데스 퀸틸리아누스 등은 고대 그리스음악의 음악이론을 구축해 낸 훌륭한 저서들을 배출해 냈다. 중세 시대에는 자유 인문 학문 중 하나로 대학에서 연구 및 교육되었고, 기보법이 처음 발전했으며, 보에티우스와 마르치아누스 카펠라, 귀도 다레초 등이 뛰어난 음악 사상가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음악 이론가였던 요하네스 팅토리스는 음악의 역사적 기록에 있어 기법이나 보편적 평가에 기준을 두지 않고 옛 음악과 교회 내의 현학적 이론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면서 요하네스 오케겜 등 작곡가들의 개별적 스타일과 기교를 자전적 배경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의 인본주의적 연구와 전기(biography)를 통한 접근방법은 결국 음악사학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었으며 또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끈 초기 단계를 형성하였다.


근대 이후

18세기 시민계층이 성장해 가는 와중에 나타난 계몽주의는 국가별로 역사에 관한 문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였고, 학문의 대중화를 이루어냈으며, 특히 음악에서는 고전주의 음악사와 같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음악 양식을 이룩해냈고, 공공음악회와 출판문화의 발전은 음악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대시켰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발전과 시민들의 음악, 나아가 과거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근대적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고 공식적인 음악 역사의 기록은 가장 보편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역사적 접근방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역사 기록의 필수 요소인 주제 영역의 정의, 자료의 비판적인 검토, 연역적 해설, 시대구분, 변화와 인과관계, 그리고 전기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사학자는 독일의 포르켈, 영국의 찰스 버니, 존 호킨스 등이 있다. 특히 포르켈은 18세기 괴팅겐 대학교에서 근대적 의미의 음악사학을 처음으로 교육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19세기에는 독일의 국력 상승과 독일 중심의 학문 발전, 일반 역사학과 역사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음악사학도 독일을 중심으로 비약적 발전을 하였다. 1861년 한슬리크가 빈 대학교 인문대학 음악사학과 정교수직을 부여받았으며 이후 베를린 대학교, 프라하 대학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등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1868년 독일음악사학회가 창립되었고 1927년 국제음악사학회가 창설되었다.


한국 음악사학

개요
근대적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음악사학 연구는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한국국악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혜구(李惠求)는 1940년대를 발표한 이래 많은 논문을 내었다. 그 밖에도 함화진(咸和鎭)의 , 성경린(成慶麟)의, 김기수(金琪洙)의 , 박헌봉(朴憲鳳)의  등의 저서가 있다. 1959년에는, 비록 인문학인 한국음악사학이 엄연히 다른 음악 연주와 작곡을 담당하는 영역과 공존하는 형태이지만,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 이론전공이 신설되어 한국음악사학 연구의 명예를 이어오고 있으나 인문학의 성격은 퇴화하였다. 한편 국립국악원이 주축이 되어 출시된 것으로 양악 5선보에 옮긴 이 제14집까지 나왔고 재래의 율자보(律字譜)에 의한 도 제5집까지 나왔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서 간행한 영인본(影印本) 와 가 있고 양악 5선보에 채보한 이재숙(李在淑)의 가 있다. 지금까지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한 사람으로는 권오성·한만영·이재숙·김정자·이성천·이병원·송방송·이보형·김길운·권도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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