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예술 분류법에 의하면 제 8의 예술은 사진, TV, 라디오 등의 '매체 예술'이다.
이 포스팅에서는 사진에 대한 정의, 역사에 대해서만 다뤄보려 한다.
물리학적으로 사진의 정의를 설명하면 '물체에서 반사된 빛과 같은 전자기적 발광을 감광성 기록재료 위에 기록하여 얻은 빛 그림'을 뜻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진은 사진기로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진기는 빛을 모아 필름이나 CCD 또는 CMOS 같은 이미지 센서에 초점을 맞추어 상을 맺히게 한다.
사진을 찍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사진사, 예술 활동을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을 사진 작가, 사진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은 사진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초기 사진기의 프로토타입은 카메라 옵스큐라이다. 물론 기존부터 상을 그대로 재현해내어 회화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물건이긴 하지만, 단순히 회화의 스케치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 전체를 그대로 옮겨서 표현해내려는 사고방식은 있어왔고, 19세기 들어 화학과 광학기술의 발달으로 인해 이를 실제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후 프랑스의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11년 간의 연구를 한 끝에 드디어 1827년, 자신의 집 1층에 있는 작업식 창문을 통해 역청으로 덮인 광택 있는 주석판과 암실을 사용하고 이를 라벤더 에센스로 헹구며 세계 최초로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의 사진현상법을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라고 한다. 하지만 헬리오그래피의 큰 단점은 한 장을 찍는데에 무려 6~8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방법으로는 인물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풍경사진만 찍었다.
그 후 니엡스와 함께 연구를 한 화가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가 기술을 개량해 1839년 좀 더 발전된 사진현상법인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을 발표했다. 다게레오타입은 한 장을 찍는데에 들이는 시간을 시간 단위에서 20분으로 줄였고, 이 덕분에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해졌다.
비록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해도 사진을 찍는 데에 20분이 걸렸기에 당시 인물 사진은 모든 게 정돈된 스튜디오에서, 오랫동안 동일한 포즈를 잡고 찍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게레오타입 덕분에 1840년대~1850년대까지 살아남은 유명인들이 초상화가 아닌 사진으로 실제 모습을 후대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루이필리프, 에드거 앨런 포, 프레데리크 쇼팽 등이 있으며, 심지어 나폴레옹 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웰링턴 공작과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1835년)에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은 칼로타입(Calotype)을 발명했는데, 이는 종이인화법(talbotype)이라고 불린다. 현대 사진과 유사하게 감광처리된 종이를 이용한 인화의 개념을 탄생시켰고, 본격적으로 복제 가능한 사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의 시초라고 여겨진다.
발명 초기에는 매우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의 결과로 1840년대 초반에 수십 분 이상이던 노출 시간을 수십 초 수준으로 줄이는데 성공한다.
1851년, 영국의 프레드릭 스콧 아처에 의해 개발된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은 사진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 기술이나 톨벗의 종이 인화법보다 노출시간을 줄이는데 기여하였고, 또한 음화(陰畵)에서 양화(陽畵)로 인화하는 과정도 최소화하여 사진표현 상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발명이었다. 이미 은판사진이나 종이인화법에 의한 초상사진의 수요가 증가하였으나, 습판사진술의 출현으로 한층 더 유행을 자극하여 1850년대에는 그 인기가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1888년, 코닥 사의 조지 이스트먼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진의 개념인 롤 필름을 발명해냈다. 당시 25달러짜리 코닥 필름이 들어 있는 코닥 1호 사진기에는 100장의 필름이 들어 있었는데, 100장을 다 찍고 10달러와 함께 코닥 사에 우편을 보내면 사진을 다 인화해주고 새 필름을 넣어주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스템이었다. 이로써 현대적인 사진이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코닥사의 필름을 뤼미에르 형제나 에디슨 같은 초기 영화 제작자들이 사용함으로써 영화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컬러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세계 최강의 역대 미국 대통령 사진을 봐도 알겠지만, 세계 최초의 컬러 사진이 1861년에 찍혔는데, 컬러 사진을 찍은 미국 대통령은 그로부터 50여년은 더 지난 후에야 나왔다. 그것도 미국 같은 엄청난 부자 나라의 권력을 가진 권력층조차도 컬러 사진을 찍기는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1900년대 초중반에 찍힌 사진들만 보더라도 컬러 사진보다 흑백 사진이 매우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꾸준한 기술 발전이 이뤄졌음에도 컬러 사진이 대중화되기 까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촬영은 가능했으나, 현상이 비싸고, 플래시 기술의 문제로 특수한 경우에만 쓰는 사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1960년대부터 컬러 사진이 상용화 된 곳은 유럽과 미국 등, 당시에도 꽤나 잘 살았던 국가들인데, 당시엔 한국이 가난해서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도 한국은 흑백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컬러 사진은 1970년대 중후반에야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1988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컬러 사진이 대중화되었다.
한편 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했던 일본은 미국, 유럽등과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부터 이미 많아졌고, 1970년대에는 완전히 대중화가 되었다.
이후 한 세기 가까이 사진의 기본틀은 유지되어 왔으나, 21세기에 들어선 직후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사진은 기존의 필름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나뉘게 된다.
디지털 사진이 화소성능 향상과 더불어 아날로그 사진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상을 얻을 수 있고, 아날로그 사진보다도 복제와 재생산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로서는 예전의 필름 사진을 압도하고 있는 사실이나, 아날로그 사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색채나 질감을 중시하는 마니아층의 수요가 있어 아직까지는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